선의 현대화 잡담

샬럿 조코 백. 그녀는 미국인 승려다. 60년대에 일본 조동종 선사들 밑에서 공부했고, 78년에 타이잔 마에즈미 선사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게 된다. 이후 그녀는 샌디에고에서 선센터를 열고 선을 전파하는데, 그녀의 선 지도는 지극히 현대적이다. 고답적인 냄새가 없다. 선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천년전 중국 선사들의 목소리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오늘날 한국 선불교가 당착한 문제를 그녀는 온전히 극복해냈다. 미국의 선은 대체로 이렇게 현대화가 되어있다. 유럽과 미국에 둥지를 튼 선센터들이 이러하다. 그들은 불교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는 서양인들에게 선을 전파하기 위해 부지런히 고민하고 고민했다. 서양에서 선을 이야기할 때는 천년전 날 것 그대로의 공안과 날 것 그대로의 고답적인 법문들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열심히 다듬고 또 다듬어서 선을 알려주었다. 그 선사들의 가르침을 계승한 2세대 서양인 선사들이 더 완벽한 선의 현대화를 완성했다.

한국의 선불교는 아직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깨달음을 인가받은 선승들께서는 여전히 당송시대 공안과 법문 안에 갇혀있다.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깨달음을 전수하기위해 선을 현대의 언어로 재포장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소한 승가에는 전법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 깨달은 선승들은 언어를 배워야 한다. 언어를 여의었어도 다시 언어로 돌아와야한다. 두 다리는 언어를 여읜 바탕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두 팔은 언어의 세계에서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깊은 산 속에 들어앉아 고준하게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법전스님의 자서전을 보면, 당신께서는 한 평생 살면서 본 영화가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신다. 과거에는 그러한 것이 선가의 귀감이었다. 선승은 세속으로부터 종적을 감추고 초연히 선방에 앉아있는 것으로 깨달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대다. 세속이나 절집이나 할 것 없이 누구나가 유튜브를 본다. 불교, 깨달음, 선에 관한 법문집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온다. 세상은 겉잡을 수 없이 바뀌어나가는데 한국의 선불교는 너무도 안이하다. 그 안이함이 결국 도태를 불러들이고 있다. 간화선 위기론이 등장한 지 몇년이 지났다. 제방에는 남방의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이들이 절반을 넘어간다. 화두는 깨달음을 잊어버린지 오래다.

한국의 선을 유일하게 현대화시킨 분이 바로 숭산스님이다. 숭산스님은 스물셋에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당신께서는 그저 제방을 다니며 세월만 보내셔도 큰스님으로 대접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으로 가서 낡은 아파트에 조그만 방 하나를 얻고, 세탁소의 기계공으로 일하며 선을 전파했다. 숭산스님의 족적은 한국의 다른 선사들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는 모험을 했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선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고승들께서 당송시대의 공안과 법문을 읊을 때 당신은 푸른 눈의 서양인들을 앞에 두고 오직 모를 뿐을 이야기했다. 가르침이란 모름지기 시대와 호흡해야한다. 시대와 유리된 가르침은 호흡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깨달음일지라도 우리 자신의 맥박 위에서 증명되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골동품에 불과한 것이다.

아쉽게도 오늘날 한국 선불교의 현대화를 이끄는 것은 승가가 아닌 재가이다. 재가수행자들이 조사선의 직지를 표방하며 선을 현대화하고 있다. 선의 전통성을 온전히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안목과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언어에 맞춰 선을 전파한다. 그들의 선에는 고유함이 있다. 본래 가르침에는 저마다의 고유함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당송시대 선승들에게는 각자의 가풍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방망이를 휘두른다. 누군가는 조곤조곤 일러주는가하면 또 누군가는 손가락 하나만을 세울 뿐이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고 또 누군가는 모든 것을 긍정한다. 저마다의 방법은 달랐지만 그것이 가르치는 귀결점은 모두 동일하였다. 이러한 가풍의 다양성을 오늘날 승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천편 일률이다. 모두가 당송시대 고승들의 언행을 따라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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