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선불교와 후기 선불교 잡담

선종의 초조, 선불교의 창시자 달마가 들여온 선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껏 있어왔던 모든 수행의 방식을 뒤엎는 극한의 센세이션이었다. 모든 종교가, 모든 수행이 점차 닦아 깨달음을 이야기했다면 달마의 선은 닦음없이 바로 깨달음을 향한다.

달마가 중국에 선을 들여와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9년간 소림굴에 면벽한 것을 생각해보자. 중국으로부터 선을 들여온 한국불교 선종의 시조 도의국사는 어떠한가? 신라의 승려들이 선법을 이해하지 못해 그는 평생을 설악산에서 은거해야했다.

선이란 과연 무엇인가? 조사들께서 선을 들여왔을 때 사람들은 왜 선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선종이 시작되기 이전에 중국이나 신라는 모두 전통적인 지관수행을 하고 있었다. 차제로 닦아 깨침을 이야기하는 지관수행은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아무런 이의없이 받아들여진다. 열심히 좌선을 해 선정을 닦고 관법 수련을 해 깨달음에 이른다! 이 얼마나 상식적인가. 그러던 어느날 달마라는 승려가 나타나 느닷없이 이야기한다. “직지인심 견성성불. 마음을 바로 가리켜 깨닫게 한다!”

불교의 전통적인 지관수행이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에서 수행을 해나간다면 달마의 선은 인식의 주체, 즉 존재 그 자체를 겨냥한다. 어떻게? 법문. 문답. 대화. 언어로써 언어를 여의게 한다. 존재를 바로 가리켜 존재의 공성, 즉 무아를 철견케한다. 달마가 가져온 선에는 비빌 언덕이 없다! 수행자들은 깨닫기 위해 수행법을 찾지만 달마의 선문에는 수행법이란 것이 없다. 단지 눈 밝은 스승이 제자에게 가리켜 곧바로 마음을 보게하면 제자는 그 자리에서 마음의 공함을 깨닫게 된다.

“저의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부디 이 마음을 안심케 하여 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그 마음을 가져 오너라. 내가 너를 위해 안심케 해주겠다.”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미 마음을 안심케 해 마쳤느니라.”

이렇게 곧바로 깨침을 이야기하니 사람들은 쉬이 납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깨달음이란 오랜 좌선을 통해 선정을 닦아야만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달마의 문하에선 선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직 견성, 자신의 본래면목, 자신의 실존,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직관하길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안목이 열렸을 때 그 안목의 관점을 바탕으로 닦여져 나간다.

이미 유식과 여래장 사상, 대승기신론의 깨달음관에서 이러한 수행의 원리. 깨달음에 관한 단도직입적인 직관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추측컨데 달마는 이를 극대화하여 ‘직지’라는 아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행법을 개발했을 것이다. 달마라는 천재의 너무나도 파격적인 수행법. 이것은 과거의 모든 수행법의 레파토리를 뒤엎는 거대한 센세이션이었다. 때문에 달마의 가르침은 교외별전이고 불립문자이며 최상승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선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종단은 달마에서 육조로 이어지는 선종의 맥을 잇고 그 정신을 계승한단 뜻에서 그 이름도 조계종이라 지었건만 실질적으로는 차제로 닦아나가는 점법을 실시한다. 오랜 좌선을 통해 화두를 동정에 몽중에 일여하게 만들고 선정 삼매에 든다는 것은 초기 선종의 가르침과는 너무나도 상이하다. 아마 선종이 규모가 커져 조직화되고 체계화를 이루었기에 따른 필연적 변화였으리라.

초기선종은 4조 도신에서 5조 홍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500여명 규모의 수행자 집단으로 거듭난다. 이후로 점차 점차 규모가 커지고 수많은 선종사원이 건립되면서부터는 수많은 수행자들을 선지식이 직접 제접하며 가르치기에 역부족이었을지 모르겠다. 또 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로인해 많은 폐단이 발생하면서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묵조선 간화선 등이 등장하였으리라. 이런 선종사적인 흐름과 함께. 선원이라는 출가 승려들의 수행 조건, 이를테면 시간의 여유가 많고, 고요한 환경과 집중적인 수련을 할 수 있는 선실(禪室)을 갖춘 조건들이 후기 선불교의 수행을 초기 선불교의 직지인심-언하변오와 같은 방식에서 후기 묵조선의 좌선간심이나 후기 간화선의 사마타적 화두참구 방식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