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애포기자의 수기 잡담

사람을 만나다보면 언제부턴가 상대가 나와 비슷한 종류의 인간인지 아닌지 본질적인 직감이 온다.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냄새를 맡고 피어난 호기심은 어느새 연모의 감정으로 탈피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팔베개를 해주면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시간이 지나 팔이 저려오는 것과 같이.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만남은 시간이 흘러, 낭만적 운명론에 의한 필연적 사건으로 정의되어진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서로의 신비감에, 상대의 이해심에 또 나와 닮은 모습에 점점 더 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순간 익숙함으로 변하고 반짝이던 빛이 퇴색되면서 혹은 어느 한쪽의 마음이 사그라지면서 이별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별을 겪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신비와 호기심은 끝없이 유지되었다. 왜? 애초 익숙해질 수 없었기 때문에. 나의 사랑은 혼자만의 것으로 소비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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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허무요. 남녀관계의 종착지는 결국 침대일뿐이지요. 나는 사실 사랑을 해보고 싶었어요. 딱히 누군가를 사랑했던건 아니고요. 내게 인생은 치약이었거든요. 죽기 전에 내 인생을 다 써보고 싶었어요. 닥치는대로 모든걸 경험해서 하얗게 불태우고 싶었죠.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다 먹어치워야 하는 음식처럼, 청춘을 낭비하지 않고 추억으로 가득채우겠다는 겁니다. 내게 삶은 전부 다 불태워 소모시켜야 하는 연료였거든요.

그래서 동기 여자애 한 명에게 고백했어요. 걔가 술 먹고 내 어깨에 기대 운 적이 있었어요.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나봐요.

한번은 다른 과 여학생 번호를 땄어요. 그녀가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냥 사랑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상대는 누구라도 상관없었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여학생 뒷모습만 보고 번호를 땄어요. 번호 따고서야 제대로 쳐다본 얼굴은 별로 예쁘지 않았지요. 다음날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셨는데, 그걸로 끝이었어요. 딱히 할 말이 없었거든요. 그녀는 나를 경계했죠. 이 남자는 도대체 왜 내 번호를 땄을까하는 의구심을 해결해주지 못했어요.

두 번이나 뜻대로 되지 않아 실의에 빠져있던 차에 이번엔 제가 대시를 받았어요. 봉사활동에서 만난 어린 친구였는데, 꽤나 적극적이었죠. 스킨쉽을 좋아했어요. 사는 도시가 달라 장거리 연애를 해야했지요. 처음에는 상당히 흡족했어요. 남들이 이야기하는 그 알콩달콩 연애를 비슷하게 체험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간과했던 사실 하나가 있었어요. 연애는 귀찮은 일들의 연속이라는걸요. 누군가를 챙겨줘야 하고 배려해야 하고 다독거려야 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그런 척해서는 상대가 귀신같이 알아차리니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 매일같이 데이트에 무난한 옷차림을 고민하고, 얘기할 땐 맥락 없는 거친 말을 주의하고, 사소한 것들에도 관심을 보여야하고. 시도때도 없이 날라오는 카톡이며 삼십분 한 시간 끝날줄 모르고 이어지는 한밤중의 통화는 제게 연애란 정교한 노동이란 사실을 일깨워주었지요.

그 친구는 결국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어요. 슬펐냐고요? 아뇨. 그 친구와의 만남은 결국 사랑 비슷한 것을 흉내내긴 했지만 사랑은 아니었어요. 저는 이쯤에서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지요. 사랑 혹은 연애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발명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에요. 원래 인류에겐 성욕과 섹스만 있지 않았을까요? 사랑이 문명의 발명품이라면, 사회적 담론에 불과하다면 굳이 꼭 사랑해야할까 생각했어요. 그저 성욕과 섹스에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내게 있어 사랑이란 뿌연 신기루와도 같은데.

이후에도 몇번 연애의 기회가 있긴 했지요. 편의점 일을 할 때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매번 등굣길에 들러 제게 음료수를 주고 갔어요. 좋았냐구요? 그럼요. 어쨌든 남에게 호감을 산다는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요. 헌데 제가 그 아이와 만나서 무얼 얘기하겠어요? 파릇한 여고생한테 생에 대한 권태와 인생의 부조리함을 논할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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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또 그렇게 된다고 해도 과연 그게 좋은 것일까요? 내 삶의 의미는 다른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지 솔직히 망설여져요. 제게 삶의 의미가 될만한 타인은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이후로 호프에서 일을 하다 눈 맞은 여자애와 섹스했어요. 두근거리는 설렘, 밀당의 아슬아슬함 그런 것들 다 건너뛰고 말에요. 알코올과 니코틴이 충족된 상태에선 그런 것들이 필요없거든요. 가슴은 많이 작았어도 얼굴이 예뻤어요. 서로 물고 빨고 때리고. 앵앵대는 신음소리가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그 애와 저는 서로 훌륭한 섹스 파트너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곰곰히 생각하노라면 제겐 연애보다 원나잇섹스가 더 자연스러웠노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섹스는 자연이 프로그램한 것이고 사랑은 문명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문명은 자연을 억압해서 더욱 강렬한 금욕주의적 메카니즘을 만들어냈어요. 문명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욕망을 규제하고 억압한 것이죠. 물론 그게 잘못됬다고 할 순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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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하고 싶은 사람과 곧바로 섹스를 한다면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 거에요. 사랑은 섹스하고 싶다는 바로 그 충동 욕망에 대한 억압에서 생겨나니까요. 사랑은 일종의 성욕의 승화아니겠어요? 그것이 내면으로 억압되서 정신에서 폭발하는 것이지요.

저는 사랑을 찾아 헤맸어요. 근데 이제는 헤매지 않아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랑의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제 나름대로 그 정체를 밝히게 되었거든요. 저는 이제 스스로 사랑을 발명할 줄 알게 되었어요. 이 발명품의 이름은 짝사랑이라 짓겠습니다.

이후에 저는 정말 매력적인 여자애를 만났어요. 그렇게 예쁘진 않지만 가슴이 컸거든요. 어쨌든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첫눈에 반했고,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요. 가슴이 두근거리는데는 별 이유가 필요 없었어요. 왜냐.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생각으로 이뤄지는게 아니었거든요.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성욕 그 자체에요. 생각이라기 보다도 반짝하는, 찰나의 순간적 판단에 가까운 것이니까요.

저는 그녀와 자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여기는 문명사회이고, 원나잇이 아니라면 섹스까지 거쳐야할 수많은 단계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단계들은 저를 피곤하게하고 귀찮게하고 좌절하게 만들어요. 결과적으로 제 욕망은 억압당하고, 억압되서 사랑이 되지요. 일단 사랑이 되면 그 억압 자체를 또 즐기게 되요. 사랑은 특이하게도 억압될수록 즐거워지죠. 왜냐하면 성욕의 억압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랑을 원했어요. 가급적이면 영원한 사랑 말에요. 사정이 이러하다면, 영원한 억압을 만들어내면 되지 않을까요? 영원한 억압은 영원한 사랑을 낳으니까요. 이 영원한 사랑의 이름은 짝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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