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잡담

내가 처음 선원에 들어갔을 때, 좌선하는 법이라던가 화두드는 법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새벽에 일어나면 얼른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시간 맞춰 좌복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럴싸하게 가부좌를 하고 법계정인을 하고 있어도 내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따로 화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스스로 화두를 간택했다. 처음엔 무자를 들어볼까 하다가 별로 와닿는 바가 없어 마삼근을 들었다. 어느 승려가 동산수초 선사에게 물었다. "부처가 무엇입니까?" "마 삼근이니라." 부처가 무엇이냐 묻는 승려에게 선사는 마가 세 근일 뿐이라 이야기했다.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의심하고 또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삼근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루하루 날이 거듭할수록 마삼근이 입에 달라붙었다.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마삼근하고 되뇌여졌다. 다만 의심이 문제였다. 새벽에 눈 뜰 때 마삼근이었고 저녁에 눈 감을 때 마삼근이었지만 그 와중에 의심은 없었다. 그저 노는 입에 염불하듯 시시 때때로 마삼근과 어째서만을 기계적으로 되뇌일 뿐이었지 절박한 의심이라곤 도저히 일어나지가 않았다.

선원장스님과 독참했을 때, 선원장스님은 흰 바탕에 점을 찍으면 무엇이 드러나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흰 바탕이 드러난다고 대답했다. 그것을 알았다면 다음부턴 따로 공부를 물을 필요가 없다는 스님의 말씀에 나는 도저히 감을 잡지 못했다. 이후 다시 독참을 했고, 스님은 내게 마삼근을 의심하는 그 놈을 의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이것을 의심하였다. 이것... 대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탕에 관한 이야기다. 새벽 눈 뜨고 저녁 눈 감을 때까지 발 딛고선 바로 이것. 이것이 무엇인가? 이게 뭐지? 이 의심에는 묘함이 있었다. 이전에는 어째서 이것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싶을정도로 온통 이것의 의심 뿐이었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말하는 이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제는 의식적으로 되뇌지 않아도, 그 의심의 눈초리가 떠나질 않았다. 밥을 씹어 넘길 때도, 해우소에 쪼그려 앉아 있을 때도, 다른 스님들과 잡담을 나눌 때도, 좌복 위에 앉은 채로 다리가 욱씬거릴 때에도, 이것에 대한 의심은 한결같았다.

의심, 온통 의심, 그 의심 뒤에 어느날 문득, 모든 것이 낯설어져있었다. 내딛는 발걸음 걸음 하나가, 움직이는 손짓 하나 하나가, 이 다리가, 이 팔이, 이 몸통이, 이 머리가, 이것이, 이것이 이렇게 있다는 것.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이것의 기이함이, 이것의 낯섦이, 이것의 새로움이, 어느날 문득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몸이 목격되고, 연이어 생각이 목격되었다. 몸이 움직이고 생각이 흐르는 와중에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난 낯선 목격이 매우 또렷했다. 마치 거의 언제나 이 낯선 지점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세상이 너무 낯설어 이해하기가 불가능했다. 여태까지 끌고왔던 모든 생각의 짐을 던져버린 듯 너무나 홀가분했다. 세상은 막 태어나 처음 접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싱그러웠고, 새롭고, 경이로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희열감이 가득했다.

이 위대한 발견이 이뤄지던 그 날 밤 나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홉시에 소등을 하고 누워있었지만 나의 두 눈은 아주 맑게 말똥말똥했다. 머릿 속에는 장황한 생각들이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바탕은 너무나 명료해서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잠에 들었고, 다시 일어났어도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다.

이후 다시 이뤄진 면담에서,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았다. 선원장스님은 그 목격과 목격의 대상이 어느 순간 합쳐지는 때가 올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그것을 잘 챙겨나가라는 이야기를 덧붙이시면서.

그렇게 해가 지나고, 이듬해 겨울 동안거를 날 때였다. 문득,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목격자마저도 대상이라는 직관이 다가왔다. 몸도 내가 아니고, 생각도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이 놈은 어떠한가? 명명백백하게 알아차리는 이것이 아주 역력하다 할지라도 잠에 들면 사라질 뿐이다. 태어남과 함께 시작되고,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이것이 바탕이라 한다면 무언가 잘못 된 것이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무엇이 알아차리는가? 그또한 결국 오온이 알아차린다. 오온이 공한 줄 오온이 아는 것이다. 생각이 공한 줄 알았다면 생각이 딛고 선 의식 또한 공한 줄 알아야 한다. 이 때가 되면 진실로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수행이란 이름의 그 어떤 조작도 할 수 없게 된다. 깨어있음과 깨어있지 못함, 알아차림과 알아차리지 못함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목격자가 물러서기 시작할 때, 수행이란 이름으로 이뤄진 모든 틀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뒤에는 온전한 여기가, 이 아주 오래된 여기가 완전히 개방된다. 모든 것이 탁 트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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